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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단턴, 주명철 역, 『책과 혁명』 - 2018 비교역사학 과제

제가 왠만해서는 과제 책을 다 읽고 쓰려하는데 이 책은 도저히 다 읽기 못해서 중간 부분을 건너뛰고 뒷 내용에서 결론만 얼른 뒤져서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양서적이라기보단 논문에 가까운 책이라 인문계 논문은 이렇구나... 하면서 좌절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전공자에게도 쉬운 책은 아닐 것 같지만 저는 인문학적 (특히 사학이나 문화) 연구방법에 아는게 없으니 더욱 힘들었겠죠.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분량 채우기에 급급해서 책 내용 발췌해 옮기느라 쩔쩔맨 흔적이 여기 저기 보이네요. 하하....
대학교 들어와서 과제로 작성한 글을 업로드합니다. 수정을 하고 올릴까도 했는데 대체로 너무 옛날에 쓴 글이라 지금 수정을 하자면 아예 새로 써야 하겠다 싶어 간단한 맞춤법 수정을 빼고는 그대로 올립니다.

 

제가 왠만해서는 과제 책을 다 읽고 쓰려하는데 이 책은 도저히 다 읽기 못해서 중간 부분을 건너뛰고 뒷 내용에서 결론만 얼른 뒤져서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양서적이라기보단 논문에 가까운 책이라 인문계 논문은 이렇구나... 하면서 좌절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전공자에게도 쉬운 책은 아닐 것 같지만 저는 인문학적 (특히 사학이나 문화) 연구방법에 아는 게 없으니 더욱 힘들었겠죠.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분량 채우기에 급급해서 책 내용 발췌해 옮기느라 쩔쩔맨 흔적이 여기 저기 보이네요. 하하....


로버트 단턴, 주명철 역, 책과 혁명, 알마, 2014.

 

프랑스 혁명은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군주제가 무너지고, 근대적 민주주의 이념이 형성되는, 시대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왜 프랑스혁명이 일어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는 많은 학자의 관심사이다. 그중 한 명인 로버트 단턴은 책과 혁명에서 책과 혁명의 연관성을 보이고자 18세기 프랑스인은 어떤 책을 읽었는지 파헤친다. 그는 이 질문이 더 크고 거창한 질문, 왜 가치체계는 바뀌는가, 여론은 어떻게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가, 더 나아가 혁명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에 답할 수 있는 힌트를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33).

로버트 단턴이 프랑스혁명을 연구한 역사는 길다. 시작은 옥스퍼드에서 역사학 박사과정 논문으로 낸 Trends in radical propaganda on the eve of the French Revolution (1782-1788)이다. 선전(宣傳)과 출판물, 그리고 프랑스혁명의 연결고리를 연구한 논문이다. 그가 프랑스혁명과 인쇄물에 일찍이 관심이 많았음이 드러난다. 그 후에는, 조금 뜬금없게도 뉴욕타임스에 약 1년간 기자로 일했다. EUROZINE에 게재된 인터뷰를 보면 그의 아버지는 기자였고,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저널리즘에 관심이 지대했다. 그는 본래 학위를 따고 나면 기자로서 계속 살고자 했었던 듯하다. 그러나 기자 생활에 곧 싫증을 내고 역사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그 후에 낸 책 중 하나가 책과 혁명이다. 책과 혁명을 낸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프랑스 혁명과 책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책과 혁명에서 단턴은 불법 서적의 베스트셀러에 주목한다. 흔히 옛날 책이라고 하면 고전을 떠올린다. 고전은 분명 훌륭한 책이지만, 책이 쓰인 당시에 많이 팔리고 읽혔는가는 그 사실과 상관없다. 베스트셀러는 가장 많은 사람이 읽었을 책이므로 당시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또 당시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고전이 아니라 베스트셀러를 살펴본 것은 매우 타당하다.

베스트셀러면 베스트셀러지 왜 하필 불법 서적으로 한정하는가. 단턴이 이 이유를 뚜렷하게 서술하지는 않지만, 다음 내용에서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금서는 정치적인 주장을 담고 있으며 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해서, 금서는 베르사유에서 실제로 일어난 정치공작과 일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정치 현실과는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민간전승’이라 불렀던 것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하면서 현실 자체를 빚어냈고, 사건의 진행 과정을 결정하는 데 이바지했다. (41쪽)

단턴은 책을 통해 프랑스 혁명이라는 정치적 활동이 왜 일어났는가 보고자 한다. 프랑스 혁명은 기존 체제, '앙시앵 레짐'에 반하는 움직임이다. 정부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 합법 서적보다는 반동적이고 정치적인 금서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뿌리라 여겨지는 계몽주의 서적들은 대부분 금서였다.

불법 서적을 조사하려면, 무엇이 불법 서적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 이후, 책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고, 그 모든 책을 검열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서적감독관들은 합법을 아주 미묘한 차이에 따라 특허, 묵인, 단순허가, 경찰 허가, 단순 관용으로 나눴다(37). 이런 체계에서 합법 서적은 언제 불법이 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단턴은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순수하게 비합법적인 책을 추적했음을 분명히 밝혔다(38). 당시 인쇄업계 사이에서 철학책이라 불린 서적이다. 이 경우, 감시망을 피하려고 별도의 거래 과정을 거쳤다. 서적상과 출판사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철학책이라고 직접 언급하기도 하므로, 그 범위가 명확하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추리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그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뇌샤텔 출판사의 판매 목록을 분석한다. 아쉽게도 다른 출판사의 자료는 많지 않고 단편적이다. 뇌샤텔 출판사는 충분히 큰 출판사이고, 프랑스에 미친 영향력도 상당했기에 자료의 양은 방대하다. 단턴은 자료를 분석하면서 계속해서 뇌샤텔 출판사가 프랑스 전체의 출판시장을 대변할 수 있는지 자문(自問)한다. 자료가 편향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많은 주변 자료들, 경찰의 보고서, 인쇄업자와 고객이 주고받은 편지 등을 참고하여 교차 분석한다. 그가 참고한 자료의 구체적인 양은 다음과 같다.

뇌샤텔출판사 목록: 457개 제목.
세관 압수: 280개 제목 그중 166개(59%)가 뇌샤텔 출판사에 수록.
경찰 급습: 300개 제목 그중 179개(60%)가 뇌샤텔 출판사에 수록.
은밀한 도서목록: 261개 제목 그중 174개(67%)가 뇌샤텔 출판사에 수록. (120쪽)

이렇게 추린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보이는 철학책유형은 정치적 중상비방문, 파렴치한 추문, 포르노그래피가 주가 된다. 명저라 일컬어지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그 목록에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단턴은 단순히 프랑스혁명이 계몽주의와 상관이 없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고 주의한다. 그는 책의 성격과 내용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피고, 목록 상위권에 위치한 책 중, 전집 혹은 요약본이 있음을 지적한다. 루소 전집에는 당연히 사회계약론의 내용이 들어가 있고, 특히 에밀5부에 실린 대중판은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루소뿐 아니라 다른 많은 계몽사상가의 철학을 쉽게 풀어쓴 철학 개론서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6%의 가장 큰 하위범주를 이룬다(137).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계몽주의 철학 논문은 도서 시장에서 수요가 거의 없었을지라도, 그 철학 자체는 거의 모든 철학책에 스며들어 있었다.

책에 수록된 3개의 책에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난다. 계몽사상가 테레즈는 가톨릭 신부의 외설적인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면서 종교적 권위를 깎아내린다. 기존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은 계몽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동시에 상당히 진보한 성 관념을 보여준다. 당시 (특히 여성의) 자위는 기력을 쇠하게 하고 병을 유발한다고 여겼으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였다. 심지어 계몽주의의 대표주자인 루소조차 자위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자위가 재조명되었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몽사상가 테레즈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책임에도, 여성의 자위를 권장할 만한 것으로 이야기한다. 비록 여성인 테레즈는 성()을 배우는 모습에서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 독자층이 주로 남성이기에, 남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묘사가 주요하다는 점에서 시대적 한계를 보이지만, 당시 성 관념을 뛰어넘는 사고를 보여주는 것은 놀랍다.

2440, 한 번쯤 꾸어봄직한 꿈은 미래를 상상하고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놀라운 저작이다. 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일화는 전형적인 중상비방문이다. 단턴이 설명한 바에 따르면, 실제 역사처럼 느껴지게 하는 수사법으로 설득력을 갖췄다. 각각의 책에는 계몽사상의 무한한 공상과 실험적 사고들이 스며들어 있다.

철학책의 유형을 정치적 중상비방문, 파렴치한 추문, 포르노그래피로 이야기했지만, 어느 한 가지 유형만을 순수하게 반영하는 책은 없다. 여자 주인공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파렴치한 추문을 통해서 정치적 요직에 있는 인물 혹은 왕을 중상비방하는 식이다. 단턴은 이 책들에서 엿보기 취미라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이러한 범주의 전체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엿보기 취미voyeurism였다. 난봉꾼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열쇠 구멍을 통해서, 또는 장막이나 나무 뒤에서 서로 관찰했다. 그리고 독자는 그들의 어깨너머로 그 인물들의 행위를 지켜보았다. 삽화를 곁들여 효과를 더 높였다. 사실 삽화는 종종 화자話者가 은밀히 지켜보는 앞에서 결합하는 짝들을 보여주었다. 화자는 (여자인 경우도 자주 있었는데) 그들의 행위를 훔쳐보면서 자위행위를 하고 독자도 똑같이 하라고 권유했다. (137쪽)

많은 수의 중상비방문이 사생활을 엿보는 내용이고 계몽주의자 테레즈샤르트르 수도원의 문지기 동 부그르 이야기의 성행위 장면이 엿보는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엿보기 취미가 있었다는 것은 그다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엿보기 취미가 있었는지는 언급하지 않고, 단지 그 표현상의 효과만 이야기하는 데 그친다.

단턴은 책의 2/3에 걸쳐 당시 프랑스에서 많이 읽혔던 책을 이야기한 후, 당대 독자에 관해 논의한다. 당대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은 현대와 상이하다. 당연히 같은 책을 읽더라도 다르게 이해하고 다르게 반응한다. 책 내용이 '앙시앵 레짐'에 도전하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독자는 그저 가십거리로만 소모할 뿐이라면, 책은 사회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단턴은 독자가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기 위해, 독자가 문화적 틀 속에서 인식한다고 보고 담론을 분석한다. 단순히 독자를 문화적 틀 안에 가두었으면 인간을 너무 단순화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을 테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당부를 덧붙인다. “거의 모든 문화체계는 텍스트에 독창적이고 서로 모순되는 반응을 제공할 만큼 충분히 범위가 넓다.”(287쪽)

당시 대중이 거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경찰 첩자의 보고서에서 발견된다. 단턴은 여기서도 첩자의 보고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라고 당부하면서 파리에 나돌던 소책자와 노래, 인쇄물을 함께 보며 분석하는 철저한 면모를 보인다. 여기서 그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악담과 추문, 거리에 떠도는 시와 노래를 소재로 작가가 책을 쓰고, 책의 독자가 그 내용으로 추문을 퍼뜨리는, 상호 강화하고 증폭되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그러나, 거리에 떠도는 소리와 책의 연관성은 어디서 나타나는지 구체적인 사례는 보여주지 않는다. 앞에서 책 목록을 보여주고, 당대 사람들끼리 주고받은 편지 내용을 소개해 주던 그 친절함이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본인이 발견한 정황을 바탕으로 금서가 어떻게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는지 설명한다.

재담과 민요는 사라지고 잊혀지기 쉬운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책은 이러한 주제를 인쇄물로 고정시켰다. 그리하여 그것을 보전해서 널리 퍼뜨리고 그 효과를 늘려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이 폭넓은 설득력을 가진 이야기 속에 그것을 담아냈다는 사실이다. 카페에서 주고받은 일화나 불손한 혼잣말이 인쇄된 책 속에 나타나면 그 성격은 달라졌다. 인쇄물로 탈바꿈하면 실제로 그 의미가 달라졌다. 왜냐하면 책은 사소하게 보이는 요소를 섞어서 규모가 큰 서사구조 속에 집어넣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구조는 종종 철학과 역사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291)

이런 효과는, 앞서 언급한 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일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책은 중상비방문을 당대 역사라는 거대 서사에 집어넣었다. 마치 역사서를 읽는 듯한 서술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이렇게 완성된 서사는 인쇄되어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다. 책이 대중이 혁명을 일으키도록 적극적으로 호도한 것은 아니다. 금서의 저자들이 혁명을 염두에 두고 책을 쓰지는 않았으며, 대중이 책을 읽고 불현듯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니다. 그러나 책은 대중의 가치관에 서서히 스며들면서, '앙시앵 레짐'의 정통성을 붕괴시키고, 군주정과 왕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단턴이 인정한 것처럼 자료는 빈약하고, 논리는 주변을 돌다가 간신히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부족한 자료를 가지고도 이처럼 집요하게 파헤쳐서 논증을 펼치는 모습은, 감히 비판하고자 하는 의욕을 꺾는다. 끊임없이 자신의 논거를 성찰하며 부족한 부분을 비판하는 모습에 자료가 부족하니 신뢰할 수 없다라는 말은 구차하기까지 하다.

단지 교양을 쌓고자 한다면, 이 책은 그다지 추천할 만한 책이 아니다. 탄탄한 근거와 정밀한 논증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한다기보단, 방대한 자료들로 포괄적인 해석과 직관적인 주장을 한다. 책 대부분이 자료를 소개하고 어떻게 해석할지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역사연구에 관한 충분한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로서는 읽기 굉장히 힘든 책이며, 이해하기도, 비판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역사 및 사회학을 공부하며 연구를 하고자 하는 학생, 혹은 이미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잘 정돈된 자료를 보여주면서 한 단계씩 천천히, 또 매우 구체적으로 연구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일반 독자에게는 머리 아픈 부분이지만, 역사 및 사회를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천천히 따라가면, 당대의 책을 통해 여론과 사회상을 분석하는 연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턴이 서론에서 밝힌, “내용 분석이 어떻게 학문의 한 분야로서 서적 역사의 핵심을 이루는지 보여주고 앞으로 더욱 높은 수준의 (금서)연구가 나올 수 있도록 머릿돌을 놓고 싶다라는 이 책의 또 하나의 목적에도 부합하는 일이다.